서양미술사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 문명의 시작은 미케네 문명의 멸망 이후 그리스에 많은 도시국가들이 생겨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스 문명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영양을 받았지만, 폐쇄적인 도시의 성격과 민주주의의 가치로 인해 그리스 고유의 문명이 발달하였고 미술에도 반영되었습니다. 그리스 문명은 로마에 정복되기까지 1,200년 동안 찬란하게 꽃피웠습니다. 서양미술사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 문명의 시작 미케네 문명이 멸망하고 나서 그리스에는 도시들이 등장하면서 그리스 문명이 탄생했습니다.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리스만의 특성을 살려서 서양 문명의 본질을 이뤘습니다. 서양미술사를 보면 그리스의 미술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유럽은 15~16..
신화에 나오는 가상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트로이와 미케네의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그 이후 미케네의 유적도 그리스에서 발견되었고, 미케네에서 사용했던 선형 문자 B의 뜻이 해독되면서 그리스 문명과의 연관성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트로이와 미케네의 연결 고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트로이 목마 이야기를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사람이 트로이를 발굴하였고, 그때부터 트로이 전쟁이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지금의 트로이는 거의 폐허만 남아있고, 방문자를 위해 트로이 목마를 복원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대충 만들어서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정도입니다. 트로이의 목마는 고대 그리스..
서구 문명의 근원지인 그리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전성기를 누렸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활발한 교류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배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스로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들러야 했던 크레타섬에서도 역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문명의 시작 그리스 문명은 서구 문명의 근원지이기 때문에, 그중에서 그리스 미술을 살펴보면 서구의 미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많은 것들을 발명했고 민주주의도 그리스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의 미술은 아주 훌륭하지만, 그리스의 미술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미술에서..
페르시아 미술의 중심은 다리우스 1세가 완성한 페르세폴리스입니다.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의 건축 양식을 이어받았으며 높은 단 위에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외에도 그리스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융합적으로 재해석을 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이 형성되면서 페르시아 유산은 거의 파괴되었지만 페르시아의 훌륭한 문화는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 미술의 중심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의 왕이 된 다리우스 1세는 터키를 완전히 장악하고 그리스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여 제1,2차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페르시아 군대는 철수하지만 그 이후에도 페르시아는 그리스와 경쟁을 하며 150년 동안 번성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를 크게..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7세기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자로 떠오르게 되었고, 신바빌로니아를 세우면서 수도인 바빌론에 화려한 색채의 이슈타르의 문과 신전 바벨탑을 건설하였습니다. 그 후 신바빌로니아가 혼란해진 틈을 타서 페르시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했고 오랜 평화가 유지되었습니다. 신바빌로니아의 화려한 미술을 뽐내는 이슈타르의 문 고바빌로니아는 함무라비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전성기를 누린 후 점점 쇠퇴하여 도시국가의 체제만 겨우 유지하다가 아시리아의 혼란을 틈타 신바빌로니아를 세웠습니다. 신바빌로니아는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전성기를 지내며 눈부신 건축물들을 지었습니다. 이슈타르는 수메르의 여신 이난나에서 이어온 바빌로니아의 여신으로,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슈타르의 문이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 건설된 통일 제국의 미술은 통치자의 권력을 널리 알리고 공고히 하도록 돕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타이트족은 사자의 문을 조각하여 사자가 그들을 지켜주기를 원했고, 기원전 10세기경 메소포타미아의 강호로 떠오른 아시리아인들은 넓은 지역을 정복하며 그들의 강력한 세력을 널리 알리는데 미술을 이용하였습니다. 히타이트족의 '사자의 문' 오늘날의 터키에 기반을 둔 히타이트족은 기원전 1,700년쯤 구바빌로니아 제국을 무너뜨렸으나 영토를 다스리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 300년이 지나고 나서 히타이트 신왕국을 건설했습니다. 하투샤는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로 두 개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성벽은 우르의 해자와 같은 것으로 외부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투샤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