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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스 전투를 표현한 모자이크로 말을 타고 창을 든 사람들이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이수스 전투 모자이크

     

     

    헬레니즘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와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정복하고, 그 이후에 그리스와 오리엔트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생겨난 새로운 시대의 흐름입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의 문화가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각 지역의 문화와 융합하면서 등장했으며, 통치자의 과시욕을 표현하거나 통치자의 권위를 알리는데 이용되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과 알렉산더 대왕

    그리스는 가장 번영하던 시기에 걸작들을 남기고, 스파르타와의 전쟁과 도시국가들 사이의 전쟁으로 점점 쇠퇴했습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인들이 그리스 지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스 지역을 제패한 마케도니아 왕은 필리포스 2세이고, 그의 아들이 우리가 다 아는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마케도니아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야만인으로 무시당했지만, 그리스를 통치하는 동안 그리스 문명을 존중하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미술을 통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진 왕의 표상을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가와 조각가, 금세공사까지 전속으로 두며 작품을 만들게 하여 선별된 이미지만 보여주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두상 조각을 보면 머리는 사자의 갈기처럼 표현되어 있고, 목은 두껍게 만들어 강인한 인상을 나타냅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도 그의 조각상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후의 왕들도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알렉산더 대왕이 가진 이미지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6년부터 14년 동안 통치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페르시아와 그리스를 정복하였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에서 이수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를 통해 페르시아를 완전히 누르게 되는데, 이수스 전투를 그린 그림이 현재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기원전 1세기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폼페이에서 발견된 모자이크 그림으로, 원본이 아니라 폼페이에서 원본을 보고 만든 작품입니다. 이수스 전투 그림은 알렉산더 대왕이 도망가는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를 쫓는 장면인데, 여기서 알렉산더 대왕은 투구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날리며 용맹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이 로마의 변두리 지역인 폼페이에 있는 개인 집의 객실 바닥에 있었다는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 이후에 본격적으로 그리스와 오리엔트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새로운 변화가 찾아옵니다. 이렇게 알렉산더 대왕이 이끌었던 새로운 현상과 경향을 헬레니즘이라고 합니다. 헬레니즘은 로마가 지중해의 강호로 떠오를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과 페르가몬

    알렉산더 대왕은 넓은 영토를 다스리면서 각 지역의 문화와 융합한 미술로 자신의 이미지를 나타냈습니다. 시돈에서 발견된 석관에는 사자를 사냥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사자 사냥을 했던 메소포타미아의 문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주화 속에 알렉산더 대왕을 새기면서 이집트의 태양신을 나타내는 양의 뿔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의 문화와 융합한 알렉산더 대왕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조각상과 동전이 제작되고 소비되었습니다. 한편,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한 나라에서 걷어들인 엄청난 재원을 페르가몬이라는 도시에 저장합니다. 페르가몬에 있었던 제우스 대신전 입구가 현재 독일 베를린의 박물관에 있습니다. 페르가몬은 알렉산더의 사후에도 계속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그 경제력은 전쟁을 할 때 용병을 살 수도 있었고, 평화도 돈으로 해결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쓰고 남은 것은 이후 지배 세력인 로마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신전의 기단을 보면 단단한 근육을 과장해서 표현한 신전의 주인인 제우스가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알고 감상을 하면 조각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제우스 신전의 부조는 깊이가 깊어서 조각의 느낌이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핸드드릴을 이용했기 때문에 깊게 깎을 수 있었는데, 깊게 깎은 조각은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생기면서 훨씬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

    헬레니즘 조각상은 모두 청동상이었으나 고대 그리스의 청동상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로마시대에 헬레니즘 청동상을 복제한 대리석 조각상입니다. 하지만 복제한 대리석 조각상 또한 훌륭한 미술품으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상은 그리스 후기에 보인 연극 느낌의 조각상보다 더 연극의 한 장면처럼 제작되었습니다. 리오콘과 그 아들들이라는 조각상은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조각상입니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유발한 트로이의 제사장 리오콘과 그의 아들들이 뱀에 물려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얼굴 표정이 아주 세심하게 조각되어 있고 신체가 매우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이 조각상을 발굴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으며 역동적인 신체 표현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230년 경으로 추정되는 콧수염을 기른 갈리아인이 죽어가는 모습을 조각한 조각상이나 전쟁에서 지고 자결하려고 하는 갈리아 족장의 조각상은 연극의 한 장면을 묘사해 놓은 듯 극대화된 표현으로 조각하였습니다. 야만인의 멋진 육체를 표현하여 강인함을 보여줌으로써, 야만인들을 무찌른 자신들을 더 부각하고자 했습니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이 시기의 조각상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사모트라케의 니케 조각상입니다. 니케 여신이 날아와서 승리를 알려 주기 위해 뱃머리에 착지하는 순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