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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새롭게 수도로 지정한 콘스탄티노플은 지리적으로 적의 칩입을 방어하는데 용이하여 오랜 기간 동안 수도의 입지를 유지하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가장 훌륭한 건축물 중 하나인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 있습니다.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기 330년에 로마 제국의 수도를 오늘날의 터키 이스탄불 지역으로 이동하고 도시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원래 비잔티움이라는 도시였는데 유럽과 아시아와 인접해 있고,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무역 활동이 활발했던 곳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무역을 통한 경제력도 갖추었지만 적이 쳐들어왔을 때 막아내기가 용이한 곳이었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싸여있고 육로에는 튼튼한 세 겹의 성벽을 쌓아서 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플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로 선택한 후 20세기 초 오늘날의 터키공화국이 탄생하기 전까지 수도로 남아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수도로 1,100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500년 동안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육로를 방어하였던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해자와 외벽, 높은 내벽까지 삼중으로 만들어진 성벽입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5세기에 지어져서 많은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이 성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1204년에 제4차 십자군 원정대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군의 통치를 잠시 받고 나서 동로마제국의 세력은 약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453년 동로마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콘스탄티노플에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서 가장 최고라 할 수 있는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 있습니다. 모서리에 있는 네 개의 탑은 미너렛이라는 것으로 하기아 소피아가 이후에 이슬람의 사원으로 사용될 때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특별히 지정한 성인에게 바치는 것으로 그 성인의 이름을 넣어서 교회 이름을 짓습니다. 하지만 하기에 소피아 대성당은 신성한 지혜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로, 말 그대로 신성한 지혜에게 바치는 교회입니다. 이처럼 콘스탄티노플에는 지혜와 같이 개념적인 가치의 의미를 가진 교회명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에서 교회 건축물들은 거의 파괴되어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초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서 하기아 소피아와 같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최고 교회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중간에 큰 규모의 돔이 있고 그 주위로 작은 돔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물에 석회와 모래를 섞어서 만든 시멘트를 이용한 로마의 콘크리트 기술로 만들어졌습니다. 하기아 소피아는 높이가 55m로, 현대의 건물로 비교하면 20층 건물의 높이와 비슷한 아주 거대한 건축물입니다. 그래서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어 이스탄불이 되었을 때, 이슬람교도인 오스만 제국의 황제 메흐메트 2세도 하기아 소피아를 마음에 들어 해서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여 사용했습니다.
하기아 소피아 내부 장식과 과학적인 재건 설계
하기아 소피아의 내부는 아주 화려합니다. 창문이 많아서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천장의 돔 주위를 둘러싼 창이 큰 역할을 합니다. 천장 중앙의 돔을 반원의 돔이 지탱하고 있고, 반원 모양의 돔을 작은 세 개의 돔이 지탱하고 있는 구조로 돔끼리 서로 무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천장으로 올라갈수록 높아지고 창이 많아지기 때문에 가볍게 느껴집니다. 하기아 소피아의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모자이크화입니다. 지금은 파손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모자이크화는 여러 색의 돌로 이루어져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빛이 비치면 매우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기아 소피아의 앱스에는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남쪽 입구에 있는 모자이크화를 보면 중간에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있고, 오른쪽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 도시를 선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하기아 소피아를 손에 들고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고 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화재로 불탄 하기아 소피아를 다시 재건한 황제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다시 지은 하기아 소피아는 수학자 안테미오스와 물리학자 이시도르스의 정확하고 과학적인 설계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하기아 소피아는 원형 교회와 직사각형 교회의 장점을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구현했습니다. 사각형의 건물 위에 돔을 세우기 위해 펜던티브를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보면 원형이고 그 아래는 사각형의 건물로 건설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