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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에는 살아 있는 동안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 성지 순례 열풍이 생겼고, 그로 인해 지역 간에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성물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성지 순례길을 따라 도시가 성장하면서 중세 사회의 모습은 많이 변했습니다.
중세 시대의 성지 순례 열풍
많은 중세 사람들은 성경의 '최후의 심판'이 서기 1,000년에 발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000년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중세 유럽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 기독교가 최후의 심판이 올 것이라고 알렸고,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별 일 없이 1,000년으로 넘어가자 사람들은 허무하다고 느끼면서도 안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고, 사회가 안정되어 가면서 건축물에 관심을 가지고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 낡고 오래된 교회를 새로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성지 순례가 유행했습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살아 있는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었고, 참회 방법으로 성지 순례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이 인간에게 기회를 한번 더 주는 뜻으로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더 성지 순례를 떠나고자 했습니다. 순례길은 멀고 힘든 과정이었으므로 순례길에 오르는 것만으로 고행이자 속죄의 길이었습니다. 그때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은 기독교 최고의 성지였습니다. 하지만 중세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는 길이 멀고도 험했고, 예루살렘은 당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드로 성인의 유해가 있는 로마나 마르코 성인의 유해가 있는 베네치아 등 위대한 성인이 있는 곳이 순례지로 각광받았습니다.
중세 기독교의 성물 숭배
성물이란 예수나 기독교의 성인과 연관된 신성한 물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가 매달렸던 십자가, 십자가에 사용된 못 등이 있습니다. 이런 성물이 있는 도시도 인기 있는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성물 숭배는 중세 신앙의 색다른 부분인데,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기독교와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세의 기독교인들은 성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 성물은 그들에게 중요했습니다. 실상 성물의 기적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성물을 만지고 나서 병이 나았거나 전쟁에서 이겼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기 때문에 중세 사람들은 성물을 보거나 만지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신앙심이 깊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성물은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신앙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성물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 눈으로 신앙을 확인하기 위해 성물을 보고 싶어 했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순례길을 따라 성장한 도시들
예루살렘은 현재까지도 기독교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성지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7세기부터 이슬람의 세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있었던 11세기에는 셀주크 튀르크가 통치했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이교도로부터 되찾아 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한편 중세 시대에 성지 순례를 떠난다는 것은 생사를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성지 순례가 활발해지면서 지역 간의 이동이 이루어져 길이 생기고, 길을 따라 도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중세 사회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프랑스의 도시들이 이 시기에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이 선호하는 순례지였던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베즐레는 원래 프랑스 중부에 있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이때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도시의 모습을 보면 길을 따라 양 옆으로 도시가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는 베즐레와 같은 도시들이 여러 개 생겨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본인의 마을에서 오래 머물기를 원했고, 순례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귀한 성물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순례자들이 마을에 많이 머물수록 마을 경제가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베즐레는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의 방문으로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즐레에는 12세기 초에 성 마들렌 성당이 언덕 위에 거대하게 지어졌습니다. 11~12세기의 미술을 로마네스크 미술이라고 합니다. 로마네스크란 로마식 또는 로마 풍이라는 뜻으로, 로마의 광영을 재연하는 거대하고 성대한 석조 건물이 유럽에 다시 지어집니다. 그리고 로마 건축의 색다른 특징이었던 아치가 다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