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생드니 대성당

     

     

    중세 고딕 양식의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달리 밝고 화려한 천국 같은 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고딕 양식은 생드니 수도원의 수도원장 쉬제르가 생드니 수도원을 재건축하면서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딕 양식은 프랑스 왕의 왕권이 강화되면서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습니다.

     

     

    중세 고딕 성당의 특징

    중세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교회를 천국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고딕 양식의 성당입니다. 고딕 양식의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높은 천장에 놀라게 되는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경우 높이가 약 36m로 10층 건물 높이입니다. 중간에 막히는 곳 없이 기둥이 쭉 뻗어 있고, 뾰족한 아치도 더 높아 보이는 효과를 줍니다.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이처럼 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고딕 양식의 성당 내부는 넓은 창으로 인해 많은 빛이 들어와 매우 밝습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어 사람들의 시선이 천장 쪽을 향하게 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후에 지어진 생트 샤펠 성당의 경우 벽이 없고 창으로 채워져 더 밝아진 실내를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생트 샤펠 성당의 모든 창은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어 화려한 빛을 발산합니다. 성경을 보면 천국은 밝고 맑다고 되어 있는데, 고딕 양식의 성당은 천국의 모습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높은 천장과 빛이 주는 신비로움뿐만 아니라 성당 내부의 울림이 좋아서 청각적으로도 사람들을 압도합니다. 초기 교회 건물은 목조 건물이었기 때문에 소리를 흡수하여 사람들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았고 공명 효과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석재로 만들어진 뾰족한 전장이 있는 고딕 양식의 성당은 소리를 흡수하지 않고 반사하여 공명을 구현합니다. 고딕 양식의 성당의 미적 가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과 성당 내부에 울려 퍼지는 성대한 음향이 어우러지는 것에 있습니다. 

     

     

    중세 고딕 양식의 탄생 배경

    생드니 수도원의 수도원장 쉬제르는 오래되고 낡은 수도원을 새로운 양식의 성당으로 개조했습니다. 쉬제르는 성당의 정문과 제단 부분 공사를 먼저 진행하고 축성식을 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딕 양식이 처음으로 선보이던 자리였습니다. 생드니 대성당의 제단 부분을 보면 바닥부터 천장까지 3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장 아래에 있는 단에는 일곱 개의 아치가 있고, 중간 단에는 작은 창들이 있으며 가장 윗단에는 훨씬 더 큰 창이 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창이 커져서 빛이 많이 들어오는 구조라서 시각적으로 상향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반원형 아치가 대표적이라면, 고딕 양식은 뾰족한 첨두아치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첨두아치가 사용된 적이 있지만 생드니 대성당에 사용되면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높은 건물을 지을 때 반원형 아치보다 첨두아치를 사용하면 힘이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여 기둥 사이의 간격을 넓게 하거나 얇은 기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은 묵직하고 엄숙한 느낌을 주고,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줍니다. 생드니 대성당에도 순례자들을 위한 원형 회랑이 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과는 달리 작은 예배당 사이의 벽을 모두 없애고 넓은 창이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고딕 성당의 기둥은 가늘고 가벼워졌고, 천장을 구성하는 골조가 모두 노출된 늑골 궁륭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드니 대성당에서 살펴본 특징인 첨두아치나 늑골 궁륭은 모두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비롯되었으나 생드니 성당에서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고딕 양식은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연출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고딕 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넓은 창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입니다. 쉬제르는 엄숙하고 무거운 성당의 성당의 분위기를 가볍지 않은 밝고 성대한 분위기로 변모시켰습니다. 

     

     

    중세 고딕 양식의 확산

    생드니 수도원은 프랑스의 수호 성인, 파리의 초대 주교인 생드니의 유해가 있는 곳이며 프랑스의 왕들이 묻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왕실과 좋은 관계를 가진 사람이 생드니 수도원장을 맡았습니다. 쉬제르도 루이 6세와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쉬제르는 오래된 생드니 대성당이 작고 낡아서 방문하는 순례객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당을 재건축했습니다. 1135년부터 재건축을 시작한 생드니 성당은 1144년 6월 11일에 축성식을 통해 새로운 대성당의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축성식에는 프랑스 왕 루이 7세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생드니 대성당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왕도 만족해하여 프랑스 지역에 생드니 대성당과 비슷한 대성당들이 세워졌습니다. 고딕 양식의 중심지로 급부상한 곳은 프랑스 왕이 직접 다스리던 일 드 프랑스였습니다. 일 드 프랑스에는 누아용 성당, 생스 성당,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랑 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등 많은 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이 시기에 일 드 프랑스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성당들은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두 개의 종탑과 세 개의 문, 그리고 장미 창이 있습니다. 문을 세 개로 만든 것은 쉬제르가 생드니 대성당을 재건축할 때부터였고, 성당의 정면에 장식을 많이 넣는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이 성당들이 건립된 시기는 프랑스의 왕권이 강화된 시기였습니다. 프랑스 왕이 직접 다스리던 일 드 프랑스부터 고딕 양식의 성당이 세워졌고, 왕권이 강화되면서 인근 지역에 고딕 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왕이 다스리는 지역이 넓어질수록 고딕 양식이 전파되었고 점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동유럽의 체코 프라하에도 고딕 양식의 성당이 지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