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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왕국시대에는 최초의 여성 파라오인 하트셉수트, 개혁을 시도했던 파라오인 아멘호텝 4세, 그리고 살아있을 때는 불운했지만 지금은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된 투탕카멘 등 특별한 파라오들이 있었습니다. 세 명의 파라오와 이들이 남긴 유물로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미술을 살펴보겠습니다.
최초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신왕국 시대에는 람세스나 투탕카멘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왕국의 다른 파라오들과 함께 왕들의 계곡에 있었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가 있습니다. 조각상을 보면 여성이지만 파라오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서 가짜 수염을 달았습니다. 하트셉수트는 그녀의 남편인 왕이 일찍 세상을 떠났을 때, 후궁이 낳은 의붓아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여왕이 되었습니다. 하트셉수트는 이집트의 국력을 키워서 아들인 투트모세 3세가 편하게 국정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은 훌륭한 파라오였습니다. 그녀는 죽고 난 다음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어서 자연 암반을 깎아 '하트셉수트 장제전'이라는 대단한 규모의 사원을 지었습니다.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우아하면서 아름다운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혁신적인 개혁을 시도했던 파라오 아멘호텝 4세
아멘호텝 4세는 고대 이집트의 전위 미술 선구자이자, 이집트 3,000년 역사에서 전통이나 권위에서 가장 벗어난 파라오였습니다. 그는 기원전 1,353년에서 1,335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대담한 개혁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제사장은 지위가 세습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제사장의 힘이 점점 더 막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아멘호텝 4세는 이집트의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고, 이는 미술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사자의 서'에 나왔던 신들을 다 없애면서 여러 신들을 믿고 숭배하던 이집트의 종교를 태양신 아톤만 숭배하도록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종교 개혁을 하려고 했던 것은 제사장의 권세를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제사장의 권위가 위태로워졌고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힘은 강력했지만 급진적인 개혁은 성공하기 어려웠고, 결국 개혁은 실패하였습니다. 아멘호텝 4세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갔고, 그 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투탕카멘은 제사장에게 모든 권력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변화하면 미술에도 변화가 이어집니다. 아멘호텝 4세의 개혁은 고대 이집트 사회에 영향을 미쳤고, 변함없이 유지되어 온 미술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멘호텝 4세의 조각상을 보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별하기 어렵고 그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인체를 표현하는 선이 매우 부드러워졌다는 것입니다. 아멘호텝 4세의 아내인 '네페르티티의 토르소'라고 부르는 조각상도 몸에 밀착된 옷의 부드러운 곡선이 두드러집니다. 사람의 조각상과 함께 부조에도 이전과는 다른 묘사가 보입니다. 아멘호텝 4세의 가족을 담은 부조를 보면, 태양신 아톤이 빛으로 왕과 왕의 가족들을 감싸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 부조는 몸의 일부가 동물을 형상을 하고 있던 기존 이집트 신들과 달리 신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 중에서 아멘호텝 4세의 왕비인 네페르티티의 흉상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한쪽 눈만 있는 미완성 작품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당시 이집트가 혼란스러운 시기였기 때문에 미처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러 완성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흉상은 회화를 위한 정물로 사용했기 때문에 정면성의 원리에 따라 측면만 필요하므로 눈의 한쪽만 그렸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가설은 의도적으로 눈을 완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눈은 이집트 조각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인데, 눈이 모두 완성되면 조각상이 살아날 수도 있으므로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다는 주장입니다.
불운했지만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된 투탕카멘
왕들의 계곡에 있던 왕의 무덤 중에서 투탕카멘의 무덤만 유일하게 도굴을 피했습니다. 투탕카멘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18세에 죽음을 맞이한 불운한 파라오였습니다. 재위 기간이 겨우 2~3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투탕카멘의 무덤은 크기도 작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22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아주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당시는 이집트 정부가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금지시킨 이후였기 때문에 투탕카멘의 유물은 이집트 박물관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투탕카멘의 유물은 수량이 아주 많고, 수준도 높아서 남아 있는 이집트 최고의 부장품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1,300년 경에 제작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는 투탕카멘 미라의 얼굴을 덮는 용도로 제작된 것입니다. 그의 무덤 중 5번 방에 투탕카멘의 관이 있었는데, 그 관 안에 투탕카멘의 미라와 그 얼굴 위에 황금 마스크가 있었습니다. 황금 마스크는 11킬로그램의 황금이 사용되었고 귀한 보석인 라피스 라줄리로 장식하여 아주 화려합니다. 황금 마스크의 얼굴 위에 코브라와 대머리독수리가 아주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하 이집트와 상 이집트를 상징하는 코브라와 대머리독수리를 새겨서 함께 파라오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왕족만 수염을 길렀는데,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에도 파라오를 표현하기 위해 턱수염 주머니가 있습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용감한 투탕카멘의 모습으로 장식된 궤짝이나 독수리로 장식된 팔걸이를 포함한 수컷 사자의 형태로 제작된 황금 의자를 비롯하여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유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규모가 작은 왕의 무덤에서 이 정도의 유물이 나왔다면, 도굴당한 다른 무덤에 얼마나 많고 훌륭한 유물들이 많았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투탕카멘은 살아있을 때 비운의 왕이었는데, 죽어서는 그의 무덤 덕분에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