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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나크 신전의 열주전에 높이가 24m인 기둥이 총 134개 있습니다. 각 기둥에는 파라오의 공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카르나크 대신전의 열주전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는 위대한 이집트 문명을 널리 알릴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카르나크 대신전과 아부심벨 신전을 대표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해 준 로제타스톤에 대해서도 알아봅니다. 

     

    카르나크 대신전과 이집트 신전의 표준 구조

    람세스 2세는 가장 위대한 파라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신왕국에서 거의 80년 동안 가장 강력한 군주로서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람세스 2세 시대에는 오늘날의 이집트 영토와 수단, 이스라엘, 시리아까지 확장하여 다스렸습니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북쪽 국경선을 정했고, 그 후 아프리카 내륙 안쪽까지 점령하였습니다. 그는 영토 확장에만 몰두했던 왕은 아니었고, 훌륭한 건축물을 건설하고, 많은 문화유산을 남겨 뛰어난 이집트 문명을 널리 알렸습니다. 람세스 2세가 통치 기간에 세워진 많은 유적 중에서 카르나크 대신전이 있습니다. 이집트는 다신교였기 때문에 카르나크 대신전 안에는 다양한 신들을 위한 신전과 대대로 이어진 파라오를 숭배하는 사원이 각처에 있습니다. 카르나크 대신전 초기에는 중앙에 작은 신전만 지어졌으나, 여러 건물이 계속 건설되면서 오늘날 대규모의 신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카르나크 대신전은 중왕국 시대에 처음 건설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1,400년 경 람세스 2세 시대에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카르나크 대신전에서 가장 큰 곳은 아문 신전입니다. 아문 신전 내부에는 스핑크스의 길이라고 알려진 길이 있는데, 길의 양쪽에 스핑크스 조각상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지만 사실 스핑크스 조각상은 아니고 아문 신의 상징인 숫양의 조각상입니다. 카르나크 신전의 열주전에 가면 높이가 24m인 기둥이 총 134개가 있습니다. 기둥에는 각각 다른 그림과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기둥을 만든 파라오의 공적을 새긴 것으로 대체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내용입니다. 그 당시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숙달된 전문가와 첨단 장비를 동원해야 가능했을 텐데, 거대한 돌을 들어 올리는 기술과 돌을 깎는 기술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집트 신전은 표준 구조가 있습니다. 필론이라는 입구가 있으며 그 앞에 오벨리스크를 세우고, 오벨리스크 뒤에 깃발을 세웁니다.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던 그리드 기법의 규칙성이 건축물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좌우대칭이 철저하게 지켜집니다. 30~40m 길이의 오벨리스크는 여러 조각의 돌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을 깎아서 만든 것입니다. 출입문을 지나 신전 내부로 들어가면 천장이 없는 중앙 뜰이 있고, 그 뜰을 지나가면 열주전이라는 기둥이 많은 방이 나옵니다. 열주전을 지나면 신전이 있는데, 신전에는 해당 신전을 세운 파라오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가 남긴 마지막이자 최고의 건축물 아부심벨 신전

    아부심벨 신전도 람세스 2세가 건축한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와 그의 부인을 위해 지어졌으며, 이집트의 남단에서 이집트 영토의 문화적 수호자 역할을 했습니다. 람세스 2세는 많은 정복지 중에서 아프리카 내륙의 누비아 지역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그곳을 정복했지만 반란을 염려하여, 누비아 인들에게는 이집트의 당당함을 알리고 이집트 병사들에게는 자부심을 심어줄 필요에 의해서 누비아와 가장 가까운 아스완에 아부심벨을 건설하였습니다. 이 신전 앞에는 누비아를 마주 보고 있는 4개의 거대한 람세스 2세 좌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람세스 2세가 죽은 지 약 300년 후 누비아는 이집트를 공격하여 100년 가까이 지배했습니다. 그 이후로 고대 이집트는 점점 쇠퇴합니다. 따라서 아부심벨 신전은 고대 이집트가 침몰하기 전에 남긴 마지막이자 최고의 건축물입니다. 아부심벨 신전의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제실이 나옵니다. 제실에는 여러 신과 람세스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조각상을 놓을 때, 햇빛이 들어오면 람세스 조각상을 비추게 하고, 저승의 신 프타는 계속 어둠 속에 있도록 안치하였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나일강의 범람을 방지하기 위해 1960년에 이집트가 두 번째 댐을 건설하기로 하면서 아부심벨 신전이 수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유네스코가 전 세계인으로부터 기금을 모아서 아부심벨 신전을 안전한 곳으로 무사히 옮겼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비밀을 벗긴 로제타스톤

    로제타스톤은 나일강 하류의 로제타 지역에서 발견된 비석으로, 고대 이집트어의 해독을 가능하게 한 유물입니다. 1799년에 이집트의 로제타에서 프랑스군의 피에르 중위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을 학자들이 프랑스로 가져가다가 영국에게 빼앗겨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있습니다. 로제타스톤 덕분에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비석에는 이집트의 상형 문자와 이집트 일반인이 사용했던 문자와 그리스어로 동일한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치하의 마케도니아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그리스인이 이집트에 거주했고, 공문서에 세 가지 문자를 같이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로제타스톤이 발견되고 나서도 긴 시간 동안 신성문자를 읽을 수 없었습니다. 신성문자가 그림처럼 보였기 때문에 모두 상형문자일 것이라 생각해서 읽으려고 하다 보니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언어학자인 샹폴리옹이 신성문자를 뜻글자가 아닌 소리글자로 접근하면서 드디어 신성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샹폴리옹은 두 명의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름을 먼저 읽은 다음, 그리스어로 대입하여 신성문자의 소리값을 모두 알아냈습니다. 왕의 이름은 둥근 테두리로 표시를 하는 카르투슈 때문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고대 이집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찬란한 역사가 학문으로 정립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