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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탑

     

     

    노르만족인 윌리엄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여 영국의 왕이 되었고, 윌리엄과 함께 영국으로 진출한 노르만족들은 많은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노르만족은 그들이 가진 기술력으로 영국 중세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영국이 유럽의 중심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 승리의 기록

    영국은 1,000년경부터 여러 정복자들이 치열한 전쟁을 하면서 왕위를 다투었고, 결국 프랑스 북부의 노르만 공국의 윌리엄 공작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윌리엄은 프랑크 왕국의 영주로 만족하지 않고 노르만족 기사와 함께 1066년에 영국을 차지하면서, 영국에서 노르만 왕조를 시작했습니다. 윌리엄과 함께 영국을 정복한 노르만 영주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성과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중세 건축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노르만족이 영국을 정복한 사실을 기념하고 기록하기 위해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제작했습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높이 50cm, 길이 70m의 천에 수를 놓은 작품으로 58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에는 노르만족이 영국을 정복하는 장면과 헤이스팅스 전투 등의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윌리엄 공작이 승리를 거두고 영국 국왕이 된 이야기도 보여줍니다. 해럴드 백작이 윌리엄 공작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은 윌리엄이 영국의 왕이 되는 정당성을 뒷받침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한 노르만족 기사들의 모습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노르만족 기사들이 말을 타고 앵글로색슨족의 보병과 싸우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윌리엄 공작의 이복형제인 오도 주교가 헤이스팅스 전투에 참여해서 큰 공을 세웠고 그의 주도 하에 바이외 태피스트리가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윌리엄이 처음 세운 건축물, 런던탑

    노르만족이 영국을 정복한 후에 영국의 미술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지배자가 등장할 때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새로운 건축 양식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윌리엄은 노르망디 공국에서부터 거대한 성당 건설을 이끌었는데, 영국을 차지한 후에 다양한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대륙에서만 세워졌던 건축물이 영국에도 지어졌는데, 윌리엄이 영국을 차지하고 처음으로 지은 성인 런던탑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원래 런던탑 자리에는 로마인이 영국을 정벌하기 위해 근거지로 삼았던 요새가 있었습니다. 윌리엄은 노르만족이 성을 짓는 기법을 적용하여 이 요새 위에 성을 지었습니다. 노르만족은 언덕을 쌓고 그 주위를 성벽으로 감싼 후에 언덕 위에 성을 지었습니다. 성벽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높이 27m의 이 성은 너무 높아서 사람들에게 탑처럼 느껴졌고, 후대 왕들이 근처에 탑과 성을 추가해서 집단을 형성했습니다. 그중에서 윌리엄이 처음 세운 건축물을 화이트 타워라고 합니다. 런던탑은 런던을 지키는 성이었고, 윌리엄의 궁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화이트 타워의 내부에는 성 요한 예배당도 있었습니다. 

     

     

    영국 건축 발전에 기여한 노르만족

    노르만족이 영국에 들어오기 전에 앵글로색슨족이 지었던 건축물은 목조 건물로 작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앵글로색슨족의 건축물도 조금씩 발전해서 석조로 만든 얼스 바톤 교회가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얼스 바톤 교회는 석조 건물이지만 목조 건물에 들어가는 나무틀 장식이 있습니다. 노르만족이 들어온 이후 영국 건축물의 양식은 달라졌습니다. 런던탑을 시작으로 해서 웅장한 대규모의 성당들이 세워졌습니다. 더럼 대성당은 노르만족이 주도한 건축의 역사에서 특별한 장소입니다. 더럼 대성당이 세워진 넓은 평야를 위어강이 감싸면서 흐르고 있습니다. 더럼 대성당은 대성당을 짓기 위해 노르만족의 성 건축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성당 뒤에 성을 먼저 짓고 나서 그 앞에 성당을 지어 요새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더럼 대성당이 지어진 곳은 앵글로색슨족의 터전이었는데 노르만족이 그곳을 불태우고 차지했기 때문에 반기의 위험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에 스코틀랜드 국경이 있었기 때문에 공격당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당의 주교는 종교와 군사의 지도자 역할을 동시에 했습니다. 영국은 더럼 대성당을 고딕 양식의 시초라고 주장합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가 고딕 양식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데, 영국이 주장하는 근거가 더럼 대성당입니다. 고딕 건축에는 첨두아치, 늑골 궁륭, 공중 부벽의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더럼 대성당에는 첨두아치와 늑골 궁륭이 있고, 공중 부벽과 비슷한 구조물도 있기 때문에 영국이 그렇게 주장하는데, 프랑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노르만족이 이러한 영국의 건축물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