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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니아는 기원전 7세기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자로 떠오르게 되었고, 신바빌로니아를 세우면서 수도인 바빌론에 화려한 색채의 이슈타르의 문과 신전 바벨탑을 건설하였습니다. 그 후 신바빌로니아가 혼란해진 틈을 타서 페르시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했고 오랜 평화가 유지되었습니다.
신바빌로니아의 화려한 미술을 뽐내는 이슈타르의 문
고바빌로니아는 함무라비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전성기를 누린 후 점점 쇠퇴하여 도시국가의 체제만 겨우 유지하다가 아시리아의 혼란을 틈타 신바빌로니아를 세웠습니다. 신바빌로니아는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전성기를 지내며 눈부신 건축물들을 지었습니다. 이슈타르는 수메르의 여신 이난나에서 이어온 바빌로니아의 여신으로,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슈타르의 문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인들이 이슈타르 문의 파편들을 가져가서 14m의 이슈타르의 문을 복원하여 베를린 페르가몬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문에는 여러 가지 동물 장식이 많이 되어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정복한 땅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을 사냥하는 행사를 거행했는데, 신바빌로니아에서는 사냥 대신 이슈타르의 문에 동물을 새겨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슈타르의 문은 푸른색의 벽돌로 화려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유대인들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모두 바빌론으로 데려와 노예로 삼았는데, 이 노예들을 동원해서 많은 유적들을 건설하였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대규모의 성을 지어서 사람들에게 왕의 권위를 내보이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신바빌로니아의 지구라트 바벨탑
바벨탑은 신바빌로니아의 지구라트입니다. 바벨탑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과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바벨탑은 정사각형의 8개의 단으로 되어 있고 가로와 세로가 90m, 높이가 98m의 규모였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 10,000명 이상의 유대인이 바빌론에 포로로 붙들려 왔었는데, 그때 이 지구라트를 보고 성경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돌 대신에 벽돌을 사용하고, 점토 대신에 역청을 사용했다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건축의 양식입니다. 역청은 방수가 되었기 때문에 홍수가 잦았던 메소포타미아에서 홍수 대비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벨탑이 실재했던 건축물인지에 대한 의견이 많았지만, 설계도가 있는 비석이 발견되어 실재했던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신이 신전을 지으라고 하는 꿈을 꾸고 바벨탑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발견된 비석에 네부카드네자르 2세와 바벨탑의 설계도가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는 신앙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왕들은 신으로부터 권력을 위탁받았다는 것을 강조하여 왕권의 정당성을 가지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왕이 도시의 중앙에 대규모의 신전을 건설하고 신전 건축에 참여하는 이유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 등장한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수메르인이 최초의 도시국가를 세운 이후 다양한 민족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며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낸 후, 새롭게 등장한 페르시아가 이 지역의 패권을 잡고 오랜 기간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이전의 나라들은 무력으로 다른 민족을 다스렸기에 힘이 약해지면 다시 굴복할 수밖에 없었지만, 페르시아는 문화 통치를 통해 다양한 민족이 안정적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기원전 550년부터 330년까지 있었던 페르시아 최초의 왕조인 아케메네스 왕조에서 가장 알려진 왕은 키루스 2세입니다. 키루스 2세는 신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두 강 사이의 모든 영토를 정복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통합한 큰 제국을 무력이 아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이상으로 통치하였습니다. 최초의 인권선언문이라고 하는 키루스의 원통은 키루스 2세가 신바빌로니아를 차지하고 만든 것입니다. 원통을 살펴보면 키루스 2세가 신의 뜻에 따라 그 나라 백성들을 위해 폭력적인 신바빌로니아의 왕을 격퇴하였고, 바빌로니아 백성들도 반겼으며 더 잘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모두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키루스 2세가 평화적으로 다스리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종교에 있어서도 자유롭게 허용하였습니다. 키루스 2세는 여러 민족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포용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기원전 520년쯤에 왕이 된 다리우스 1세는 영토를 더 넓히려 그리스와 충돌하였고, 제1차, 제2차에 걸쳐 페르시아 전쟁을 하게 됩니다.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탄생시킨 다리우스 1세는 새로운 수도로 페르세폴리스라는 도시를 완성했습니다. 페르세폴리스 전체가 왕궁 도시였습니다.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의 건축 양식을 이어받았습니다. 지구라트와 같이 단을 높이 쌓은 후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