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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몰락 이후의 동로마를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고, 비잔티움 제국의 미술을 비잔틴 미술이라고 합니다. 6세기에 재건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과 15세기에 건축된 블루 모스크가 콘스탄티노플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면서 초기 기독교 시대와 이슬람교의 눈부신 건축물 양식을 각각 보여줍니다. 라벤나 지역에는 비잔틴 미술의 최고 경지를 느낄 수 있는 모자이크화가 있습니다.
비잔틴 미술의 탄생 배경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로마는 외세의 침략이 계속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갔습니다. 293년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제국을 동과 서로 나누어 다스리기로 한 후 로마 제국은 동서로 다시 모으고 나누기를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다가 395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가 로마 제국을 로마가 수도인 서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수도인 동로마로 완전히 나누어 버립니다. 서로마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해서 476년에 몰락하게 되고, 동로마는 1,000년 이상을 지속했습니다. 보통 서로마가 몰락한 476년을 고대 로마 제국의 끝이자 중세의 시작 시점으로 봅니다. 고대 로마제국은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번영하였지만 동로마는 소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이전했을 때부터 문화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마가 몰락한 이후의 동로마를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하며, 비잔티움 제국의 미술을 비잔틴 미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비잔틴 미술의 최고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과 블루모스크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모스크로 사용하면서 모자이크화에 석회를 바르고 글자를 적었습니다. 하지만 석회를 떼어내면 모자이크화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다행히 현재 우리는 모자이크화를 볼 수 있습니다. 메흐메트 2세가 모스크로 사용하기 위해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고치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모스크는 내부에 신의 조각상이나 신단을 만들지 않고, 건축물이 무함마드가 태어난 쪽으로 향해 있어야 하는데, 소피아 대성당은 방향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들은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앞에 술탄 마호메트 모스크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모스크는 블루 모스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미너렛이 6개가 있는 최고의 모스크입니다. 블루 모스크는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 지어진 후 1,000년 후에 지어진 건축물입니다. 굳이 두 건축물을 비교하자면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 블루 모스크보다 규모가 더 크고 높이도 조금 더 높습니다. 블루모스크를 만든 사람은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보다 더 훌륭한 건물을 짓기를 원했지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원형 교회를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완성하게 됩니다. 메흐메트 2세가 블루모스크를 지은 이유는 모스크의 본래 역할에 충분히 부합되는 사원을 원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라벤나의 초기 기독교 교회와 모자이크화
초기 기독교 미술을 제대로 보려면 로마시와 콘스탄티노플 사이에 있는 라벤나라는 도시로 가보기를 추천합니다. 몰락하던 서로마가 잠깐 수도로 정하기도 했던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 가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초기 기독교 건축물을 8개나 볼 수 있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우스 3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인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인 갈라 플라치디아가 어린 왕을 대신해서 서로마를 다스렸습니다. 갈라 플라치디아는 13년 동안 서로마를 다스리면서 라벤나의 예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녀는 라벤나에 아름다운 교회를 다수 세웠습니다. 그중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입니다. 실제로 그녀가 이곳에 매장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건물은 규모도 작고 외부를 벽돌로 쌓아 올려서 단조롭게 느껴지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화가 있습니다. 이런 반전은 중세 미술의 특성입니다. 모자이크화는 이동이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그림이나 조각에 비해 유명하지 않고, 직접 보는 사람만이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미술입니다. 모자이크화는 벽에 석회를 바르고 밑그림을 그린 후에 미리 준비한 작은 색깔 돌을 붙여서 만듭니다. 크기가 제각각이고 색도 일정하지 않으므로 색깔 돌을 붙이는 사람에 따라 수준이 달라집니다.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에 있는 모자이크화를 보면 아주 섬세한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547년에 세워진 산 비탈레 성당도 아름다운 교회 중 하나입니다. 외관은 역시 소박한데, 내부로 들어가면 성당의 모든 벽에 장식되어 있는 모자이크화를 볼 수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와 중세 시대를 합쳐서 모자이크화의 보존이 가장 잘 되어있습니다. 특히 앱스 부분의 양쪽에 있는 두 개의 모자이크화가 아주 유명합니다. 왼쪽에는 당시의 로마 제국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수행원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황후인 테오도라와 수행원들이 있는 모자이크화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테오도라 황후를 매우 신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2개의 모자이크화로 알 수 있는 것은 황제가 이 교회를 귀중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