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머리에 사자의 가죽을 쓰고 손에 황금 사과와 몽둥이를 들고 있는 조각상입니다. 받침대 앞 쪽에 방패와 뱀의 조각이 있습니다.
    콤모두스 황제 조각상

     

     

    로마 제국의 후기 고전기는 그동안 지켜오던 사회 질서가 파괴되는 혼란한 시기였기 때문에 미술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이 시기의 조각상은 주인의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고, 주인의 의도를 제외한 부분은 더 단순해졌습니다. 공화정에서 왕정으로 변모하면서 장례 문화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로마 제국의 후기 고전기 미술의 변화

    로마 제국의 후기 고전기와 그 뒤에 이어지는 중세 초기는 그동안 지켜오던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대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콤모두스 황제가 현명한 5명의 황제에 이어 180년부터 192년까지 로마를 통치한 후 로마는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콤모두스 황제의 조각상을 보면 머리에 사자의 가죽을 쓰고, 손에 황금 사과와 몽둥이를 들고 있는데, 이는 모두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콤모두스 황제는 스스로를 헤라클레스의 분신이라고 하며, 실제 헤라클레스의 모습으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이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어색한 부분이 많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세밀하게 조각한 것에 비해 얼굴에는 주름이 전혀 없고, 눈은 반쯤 감고 있습니다.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이도록 받침대 앞쪽에 방패와 뿔 등으로 가렸습니다. 황제의 위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다소 이상한 장식과 부자연스러운 조각상입니다. 실제 콤모두스 황제는 다소 기이한 행동을 하며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소홀하여 부하 장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그 이후 로마 제국은 군인 세력에 의해 다스려지면서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헤라클레스 모습을 한 콤모두스 황제의 조각상과 전형적인 영웅의  자세를 하고 있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조각상을 비교해 보면 로마의 멸망의 조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시기의 미술은 광대한 로마 제국의 방황을 드러냅니다. 미술 중에서 죽음에 관한 부분이 로마 제국의 무질서를 잘 나타냅니다. 

     

    장례 문화의 변화, 화장에서 매장으로

    로마 제국이 몰락하면서 로마인들은 사후 세계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관심은 로마 사람들이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땅에 묻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매장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한 시기가 로마가 가장 전성기를 누리던 1~2세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례 문화는 잘 바뀌지 않고 국가 정책이나 생활 방식에 어떤 변동이 있을 때 바뀌기 때문에 로마의 화장 문화가 바뀌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국가를 다스리던 공화정에서 황제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진 왕정시대로 변화하는 때에 장례 문화가 화장에서 매장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황제의 무덤이 만들어졌고, 이후 귀족이나 돈 많은 시민들까지 자신들의 권력이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시신에 예를 다하고 관을 장식하는 것은 로마인이 죽음과 사후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로마 제국의 후기로 갈수록 미술은 사적인 용도로 이용되었습니다. 미술을 통해서 자신을 자랑하고 뽐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미술은 널리 이용되었지만 그만큼 높은 수준의 작품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2세기 초에 제작된 전차 경주장 부조를 보면, 무덤 주인, 조각상으로 보이는 부인, 승리한 전차 경주자, 월계수 가지, 오벨리스크, 돌고래 표지까지 무덤 장식에 넣고 싶은 것을 다 넣어서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리스 로마 조각 양식을 전혀 따르지 않고 주인공의 취향에 따라 최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새기려고 하였습니다. 인체의 비율이나 전체적인 구도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후기 고전기 조각은 기술적으로 퇴보하게 되었습니다. 

     

    후기 고전기 조각

    후기 고전기 조각은 인물이나 배경이 있는 그대로 세심하게 표현되지 않고 비율도 지켜지지 않은 형태로 더 단순해집니다. 람파디오의 전차 경주 조각은 그가 높은 공직에 임명된 것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작품입니다. 그것은 5세기 초에 상아를 깎아 만들었습니다. 제일 위에 이름이 적혀 있고 주인공은 그 아래 중앙에 새겨져 있고, 그 아래 전차 경주를 하는 장면입니다. 주인공을 크게 조각하여 잘 보이게 했고, 조각에 위계질서가 확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의 표정이나 옷 주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전보다 표현 방식이 더 단순해졌습니다. 조각 기법은 그리스에 이르러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후기 고전기의 퇴보 과정을 거쳐 중세 시대에는 단절됩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그 당시 사람들의 선택이었을지 모릅니다. 고대에는 이전의 조각 전통과 기법을 더 발전시키고자 노력했지만, 로마의 몰락과 함께 사람들이 그리스 로마의 전통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조각 기술의 계승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을 가치 있게 평가하는 측면에서 그리스 로마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어두운 느낌의 중세 미술보다 밝은 느낌의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에 공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후기 고전기 미술이 퇴보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