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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선문과 신전 기둥의 일부, 원로원의 일부가 보이는 로마의 포로 로마노입니다. 현재는 많은 건축물이 파손되어 있습니다.
    포로 로마노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아프리카 북부와 그리스, 헬레니즘 지역까지 다스리게 되면서 강한 제국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포로 로마노를 통해 당시 로마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고, 로마의 서민들이 살았던 인술라와 귀족과 돈 많은 상인들이 살았던 도무스를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주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부상

    로마는 기원전 약 270년에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지중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지중해에는 강력한 카르타고가 해상무역을 활발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와 카르타고는 세 번의 큰 전쟁을 치렀습니다. 결과는 세 번 모두 로마가 가까스로 이겼습니다. 그중에서 제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가 칸나이 평원 전투에서 전멸당하고도 결국 이긴 전쟁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칸나이 평원에서 로마군을 격파한 뒤에 로마로 진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카르타고의 군대도 승리는 하였으나 심각한 피해를 입고 후퇴를 해야만 했거나, 로마가 전쟁의 패배로 무력해지거나 주변 국가들의 반기로 스스로 몰락할 거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분열은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더욱 단합하게 됩니다. 그것은 평소에 로마가 주변 국가를 수용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동맹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니발은 거의 13년 동안 이탈리아의 여러 곳을 침탈하였지만 로마로 진격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카르타고는 분열하여 로마군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로마는 제3차 포에니 전쟁을 이긴 후 다른 도시와는 달리 카르타고를 완전히 몰락시키고 아프리카 북부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와 헬레니즘 지역까지 다스리게 되면서 지중해의 중심이 되었고 점점 더 강한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로마 시민의 공공장소, 포로 로마노

    로마는 처음 세워진 기원전 753년의 움집 마을에서 서기 4세기 초에는 세계에서 가장 번성하고 강력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로마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곳이 로마 시민들이 사회생활을 했던 포로 로마노란 곳으로 콜로세움과 베네치아 광장 사이에 있습니다. 포로 로마노는 비아 사크라라는 큰길을 중심으로 신전과 법원, 관공서, 시장 등의 건물이 있었습니다. 신전과 시장, 관공서와 같은 공공시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으로 로마 사람들의 실용주의와 융합하는 삶의 자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아 사크라의 끝에 오늘날의 국회의사당과 같은 로마 원로회가 회의를 하던 쿠리아 율리아가 있습니다. 원로원은 로마의 지배계급 중에서 큰 권력을 가진 소수의 집단이 모여 있는 곳으로 실제 로마를 다스리던 기관입니다. 건물의 모양은 단조롭지만 층높이가 높아서 위엄이 느껴집니다. 원로원 근처에는 바실리카 율리아와 바실리카 에밀리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실리카는 건물 내부를 나누지 않고 큰 공간으로 설계한 건축물인데,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였고 시장, 관공서 법원과 은행도 함께 있었습니다. 비아 시크라 근처에는 로마 신화 속 화합과 조화의 여신 콘코르디아의 신전이 있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고분과 신전도 있었습니다.

     

    로마인의 주택 건물, 인술라와 도무스

    로마의 시민들은 인술라라고 하는 주택에 살았습니다. 1층에는 상점이 있고 2층부터 사람들의 거주지가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5층에서 7층의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그 형태를 보면 지금의 로마 시내 풍경과 거의 비슷합니다. 오늘날의 주상복합 건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로마는 인구가 많아서 집이 많이 필요하여 높은 건물이 필요했지만, 건물 붕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7층 이하로 높이를 유지하였습니다. 귀족이나 돈 많은 상인이 살던 집과 비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인술라가 다소 허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 로마를 구성하고 움직인 핵심은 로마 시민들이었습니다. 로마의 귀족과 많은 재산을 가진 상인들로 이루어진 상류층은 개인 주택인 도무스란 곳에서 거주하였습니다. 개인 주택은 개인이란 개념과 개인의 권리가 인정된 사회에서 가능하므로 그리스에서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로마의 개인 주택은 그리스의 개인 주택보다 더 커지고 더 세부적으로 공간이 구성되었습니다. 내부에는 침실, 서재, 주방 등의 공간이 구분되어 있었고, 수영장이나 마당까지 구비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수의 로마 사람들은 인술라에 거주하였고, 소수의 사람들만 도무스에 살 수 있었습니다. 도무스는 미술사에서 중요한 자원입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미술이 가지는 의미를 추측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