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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명의 근원지인 그리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전성기를 누렸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활발한 교류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배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스로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들러야 했던 크레타섬에서도 역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문명의 시작
그리스 문명은 서구 문명의 근원지이기 때문에, 그중에서 그리스 미술을 살펴보면 서구의 미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많은 것들을 발명했고 민주주의도 그리스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의 미술은 아주 훌륭하지만, 그리스의 미술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미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기원전 2500년쯤에는 문명의 중심지는 이집트였습니다.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영국에서는 스톤헨지라는 단순한 구조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키클라데스 조각상이나 오르페우스 조각상 등은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작품인 반면, 이집트에서는 멘카우레 왕 조각상과 같은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제작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그리스의 위치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가장 가까이 있다는 사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기원전 700년부터 기원전 600년까지 그리스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아시리아까지 직접적으로 왕래를 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기원전 2,5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집트의 조각상과 기원전 600년 전에 만들어진 그리스의 조각상을 보면 돌을 깎아서 인체를 조각하는 것이나 조각 기법이 비슷합니다. 또 이집트의 하트셉수트 장제전과 그 후 1,000년 뒤에 만들어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비교해 보아도 일렬로 늘어선 엄청나게 큰 돌기둥의 모습이 유사합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00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던 페니키아로부터 받아들인 문자로 그리스 문명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였던 기원전 5세기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페르시아가 있었고, 페르시아와 겨루면서 그리스 문명이 급속히 발전되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할 때 포로로 잡혀있던 그리스인들이 건설에 직접 참여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 파르테논 신전을 지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스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로 가는 길 크레타섬의 미노아 문명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미노아 문명이 발생했습니다. 크레타섬은 이집트와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있기 때문에 교류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고대에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스로 가기 위해서는 크레타섬을 들러서 가야만 했습니다. 기원전 1,500년쯤에 섬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가 크레타섬을 덮으면서 미노아 문명은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미노아 문명은 화산재에 덮여 보존되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크레타섬의 유적으로는 크노소스 궁전이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스 왕의 궁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레타섬은 여러 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지중해의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크레타 사람들은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확대하고 부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이룬 부로 크노소스 같은 궁전도 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궁전을 처음 발견한 고고학자가 성급하게 복원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에는 왕비의 방에 돌고래 그림이 있는데, 원본은 아니지만 활기찬 분위기가 잘 살아 있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의 벽화 중 큰 소 그림은 원시시대의 동굴벽화에서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까지 이어진 황소 그림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의 엄청난 힘을 보고 소를 숭배하게 된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고 크노소스 궁전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인체를 조각한 작품인 30cm 크기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머리 위의 고양이와 양손에 들고 있는 뱀으로 추측해 볼 때 여신으로 짐작합니다. 이 여신상은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에서 발견된 여신상과 비슷합니다.
미노아 문명에서 발견된 이집트의 정면성의 원리
크레타섬 옆에 있는 테라 섬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미노아 문명이 화산재에 덮이면서 결국 사라지게 되었는데, 테라 섬의 아크로티리 도시에서도 이집트 문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크로티리의 소년 벽화와 이집트의 헤시라의 초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높이가 1m 정도 되는 소년 벽화가 이집트의 정면성의 원리에 따라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시기적으로 미노아보다 이집트가 1,000년 정도 앞서기 때문에 이 작품으로 미노아의 미술이 이집트의 미술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집트는 신분이 높거나 종교의식을 그릴 때 정면성의 원리를 지켰다면, 아크로티리의 그림에서는 신분과 상관없이 정면성의 원리를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옷을 입지 않고 머리 장식과 목걸이를 한 특징도 볼 수 있습니다. 미노아 미술에서는 진지하고 경건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미술 대신에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